
물어봐 주는 짐승
건율
3편 · 연재 중
줄거리
무리 전체를 본능으로 읽고 지켜온 알파가, 처음으로 자기 감각이 한 사람에게 완전히 기운 걸 깨닫고도 — 그 본능을 권리로 쓰지 않으려 끝까지 너에게 묻고 기다린다.
회차
1화지나가다가
버스 정류장에서 건율이 아무에게도 알리지 않은 도착 시간에 정확히 나타나 뚜껑을 미리 열어둔 국화차를 건넸다. 걷는 내내 말 대신 행동으로 배려했고(무거운 짐 선택, 전화 후 간격 축소), 처마 아래서 그는 그녀 자신도 몰랐던 신체 버릇—어깨 긴장과 손목 쥐기—을 정확히 짚었다. 그녀는 '읽지 마세요'로 방어선을 쳤고, 건율은 해명 없이 자기가 반 발 물러섰다. 사하가 도착해 건율의 이례적 행동(버스 정류장까지 이십 분 왕복)을 그녀에게 들리도록 공개 지적했다.
3화무제
처마 밑에서 농담이 진심으로 변하는 순간을 둘이 동시에 알아채고 건율이 '안 도망가네'를 남기고 먼저 자리를 피한다. 그녀는 도경의 7개 미확인 문자를 화면만 켰다 끄고 읽지 않은 채 주머니에 넣는다. 매령을 통해 건율이 그녀가 온 뒤부터 처음으로 평상에 남을 위한 자리를 비워 두기 시작했다는 사실을 전해 듣는다. 저녁 자리에서 건율은 그녀의 국에 무 대신 두부를 넣어 두었고, '자리를 비워 둔다'는 말이 나온 뒤 손 사이 한 뼘 거리를 둘 다 의식하다가 건율이 세 번째로 손을 거두며 능선으로 시선을 돌린다. 양쪽 모두 다리에 힘이 빠진 채 침묵 속에 앉아 있고, 이 화는 건율의 목 힘줄이 한 번 움직이는 장면에서 끊긴다.
4화무제
그녀가 먼저 손을 건율의 손등에 얹었고 그가 손을 뒤집어 받쳤다 — 네 번째 후퇴가 처음으로 일어나지 않았다. 건율은 밤새 저린 팔을 거두지 못한 채 깨어 있었고, 아침에 '네가 놓을 것 같아서 못 뺐어'라는 첫 직접 취약성 발화를 했다. 평상에 놓인 사흘짜리 신발을 통해 그녀는 건율의 거절 회피 전략('건네면 안 받을까봐 그냥 놔둔다')과 그 근원('받았다가 잃어본 적이 있어서')을 처음으로 해독했다. 한 뼘 간격은 유지됐으나 '비어있는 거리'에서 '채워질 걸 미뤄둔 자리'로 의미가 전환됐고, 화는 그가 다섯 번째로 손을 뻗는 동작이 미완인 채 절단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