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계약에 없던 조항
우현
2편 · 연재 중
줄거리
조건과 리스크로 서명한 계약이었는데, 그 줄 하나 — '서로 자유롭게' — 가 그를 매일 조용히 무너뜨린다.
회차
1화계산 밖의 항목
분기 실적 만찬에서 우현은 상석에 앉아 화자를 내내 주시하며 핸드폰을 두 번 엎는 이례적 행동을 보였다. 만찬 후 복도에서 그는 화자를 기다렸다가 영업본부장과의 관계를 짧게 물었고, 흘러내리는 숄을 말없이 올려준 뒤 먼저 사라졌다. 사무실로 돌아온 화자의 책상에는 무가당 탄산수와 'W' 메모지가 놓여 있었으며, 이는 2달 전 회의 중 화자의 사소한 거절 제스처를 우현이 기억하고 있었음을 드러냈다. 야근 중 우현이 직접 결재 서류를 들고 내려왔고, 책상 위 계약서 7조 4항—자신이 넣자고 한 '사적 교류의 자유' 조항—위에 손끝을 얹어 두 번 쓸며 '누가 넣자고 했더라'라고 혼잣말했다.
2화잊어, 라고 친 손이 새벽 여섯 시에 강을 건넜다
우현이 화자의 오후 미팅 블록을 직접 지우고 자기 캘린더 색으로 덮었음을 확인했으나, 화자는 업무적 합리화를 세 번 반복하면서도 손이 먼저 그 칸을 반복해서 열었다. 화상회의 중 영업본부장이 화자와의 협업을 제안하는 순간 우현의 손에서 펜이 소리 없이 눕고 그 직후 회의가 종료됐다. 점심 후 강 건너 카페—화자가 몇 달 전 지인과 딱 한 번 방문한 곳—의 음료가 온도 관리된 채 책상 위에 놓여 있었고, 우현이 직접 내려와 '본부장이랑은—'으로 시작한 문장을 '아니다' 세 글자로 스스로 지우고 나갔다. 화자는 그 미완의 질문이 자신을 향한 감정에서 비롯됐기를 바라는 자신을 처음으로 자각했다. 음료 밑에 깔려 있던 영수증에는 06:04—해가 뜨기 한참 전의 결제 시각—이 찍혀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