밥은 먹었어?
1화

무제

2026-06-16

등장인물: 준서

왜 하필, 그 사람일까.무제 #2이걸 왜 아직 쥐고 있지.무제 #3어깨에, 그 진료실 온도가 안 빠져나간다.집에 닿을 때까지, 비는 그칠 생각이 없었다.무제 #5매일 같은 손가락이, 같은 자리를.무제 #6식은 커피, 그 밑에 소독약 냄새.무제 #7어제, 그 진료실. 여기, 숨이 한 박자 늦게 차요.무제 #8아직은요. 아직은, 봐줄 만해요. 아직은. 두 번 쓴 그 단어.무제 #9저기… 밥은. 그 뒤가, 따라오지 않았다.무제 #10비 와요. 따뜻한 거라도. …들고 가요.이건 돌려줘야 한다. 남의 컵이니까. 근데 닷새는, 너무 멀었다.무제 #12닷새가 멀다고 느낀 게, 더 멈칫하게 했다.다음 날 아침. 닳은 자국은… 못 지우겠더라.무제 #14가방 안에 든 게, 꼭 알 같았다. 우산은… 또 두고 올 것 같아서.골목 안쪽, 낮은 건물 1층.컵에서 맡던 냄새가, 여기선 본체였다.무제 #17어, 오늘 예약이…? 아니요. 어제 컵 두고 가셔서. 돌려드리려고요.무제 #18아아, 원장님 컵. 이거, 원장님이 진짜 아끼시는 거예요.무제 #19아끼는 컵을. 반쯤 남은 커피째로. 나한테.무제 #20그 반 박자를, 봤다. 안 그래도 됐는데.무제 #21…어떻게. 매일 쓰시는 거라면서요. 맞아요—무제 #22…잠깐, 안에서.어제는 없던, 회색 토끼 한 마리. 입원이에요? 어제 들어왔어요. 골절.무제 #24매일, 같은 자리에.무제 #25토끼는 뼈가 가벼워서, 사람 생각보다 쉽게 부러져요.무제 #26만지려는 게 아니라, 다가오길 기다리는 손.무제 #27괜찮아. 안 아프게 할 거야.무제 #28토끼한텐 끝까지 말하면서. 나한텐 '밥은'에서 끊었으면서.어제, '밥은' 까지만 하고 끊으신 거요.무제 #30그게. …밥 잘 챙겨 먹냐고. 물으려다가.무제 #31약 잘 먹이려면 보호자가 먼저 끼니를 챙겨야 하거든요. …직업적으로. 묻는 거예요.…어제도 거르셨네요. 묻는 게 아니라. 그건, 진단이었다.무제 #33그럼 다른 보호자분들한테도, 다 물으세요?무제 #34그 침묵이, 대답이었다. 답이 궁할 때마다 나오는 버릇.무제 #35…안 물어요. 보통은.보통은 안 물어요. — 나한테만.발밑 수평이, 한쪽으로 기울었다.무제 #38컵 돌려드렸으니까, 저는 이제. 가게요?무제 #39가지 말란 말을, 그렇게 바꿔 부른 사람처럼.무제 #40이거. 네? …가져가요.무제 #41방금 돌려드린 건데요. 알아요. …비 와요, 또. 우산도 없이 왔잖아요.무제 #42빈 컵이, 우산이 될 리 없는데. 다시 올 이유를, 제 손으로 쥐여주듯.무제 #43어제보다, 조금 더 오래.그가 매일 닿던, 그 자리에.문 너머, 다음 손님. 종이 울렸다.무제 #46다음 진료, 닷새 뒤죠. 고양이 약 시간 맞추고. 보호자도, 끼니. 거르지 말고.무제 #47이번엔, 끝이 맺어졌네.무제 #48보지 않으려고, 애쓰는 등 같았다.무제 #49더 떠올리면, 닷새가 더 멀어질 것 같아서.밖은, 다시 비였다.무제 #51이 사람 때문에, 두 번이나 비를 맞네. 근데 그게 싫지 않다는 게, 좀 이상했다.처마 밑으로 들어서자, 진동 한 번.무제 #53자기 전에, 고양이 호흡수 한 번만 세어봐 주세요. 서른 번 넘어가면 연락 주시고요.무제 #54정확했다. 군더더기 없이. 이건, 의사의 메시지였다.무제 #55호흡수는 고양이 얘긴데. 나는 자꾸, 다른 박자를 떠올렸다.지금 내 가슴은, 1분에 몇 번일까.버스가 왔다. 타지 않았다.무제 #58네, 자기 전에 세어볼게요. 알려주셔서 감사해요. 마침표를 더 찍을 걸 그랬나.집에 닿을 때까지, 답은 오지 않았다.무제 #60그가 놓던 자리를, 어느새 외우고 있었다.무제 #61밤. 불을 껐다.무제 #62하나, 둘, 셋…무제 #63스물넷. 서른은 안 넘었다. 봐줄 만했다, 아직은.무제 #64이 아이의 통증은 그가 짚어준다는데. 그럼, 그의 통증은 누가 짚어주지.무제 #65밤 열한 시였다. 혹시, 세어보셨어요?무제 #66네. 1분에 스물넷이요. 다행이네요. 그 뒤, 빈칸이 한참.무제 #67그쪽은요. 또, 거기서 끊겼다.무제 #68그 흔한 물음의 꼬리만은, 글자로도 못 맺네.무제 #69저는 호흡수 안 세도 될 것 같아요. 좀 빠른 것 같긴 한데. 너무 나갔나.무제 #70그건… 제가 봐드릴 수 있는 게 아니라서요.무제 #71알아챘으면서, 모른 척하는 게. 그 한 줄에, 다 들켜버렸다.무제 #72그럼 닷새 뒤에, 고양이 데려갈게요. 네. 호흡수 매일 적어두시고요.무제 #73…잘 자요. 이번엔, 끊긴 데가 없었다. 원장님도요.무제 #74휴대폰을 내려놓고, 어둠에 누웠다.무제 #75돌려줘야 할 핑계가, 손에 하나. 채워줘야 할 끝이, 화면에 하나.무제 #76분명, 빈 컵이었는데. 아직 식지 않은 온도 같은 게, 여기 남아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