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십 분. 그는 매번 정확히 십 분을 늦는다. 그런데 왜 너는 어느새 십 분을 먼저 나와, 아무도 없는 책상 앞에서 그 빈자리를 지키고 있나. 기다리게 하는 사람을 왜, 기다리고 있나.
성수동의 그 빌딩은 1980년대에 멈춰 선 채 늙어가고 있었다. 시멘트 냄새와 오래된 나무 냄새가 섞인 2층 사무실, 합판으로 급조한 미팅 테이블 위에 네 커피가 놓여 있다. 처음 받았을 때는 손이 데일 만큼 뜨거웠는데, 이제 컵을 감싸 쥔 손바닥에 미지근한 온기만 남았다. 창밖으로 철거를 기다리는 간판들이 비스듬히 걸려 있고, 너는 그 글자들을 읽다가, 다시 읽다가, 결국 손에 든 계약서로 시선을 떨군다.
용역 기간: 6개월.
볼펜으로 그어도 될 만큼 단순한 숫자다. 시작이 있으면 끝이 있는 관계. 소품과 가구를 고르고, 공간에 앉히고, 정산서를 쓰고, 인사하고 헤어지면 되는 일. 너는 그런 일을 십 년 가까이 해왔고, 이런 현장에서 늦는 사람을 기다리는 데에는 이골이 났다. 늦는 사람한테는 늦게 가면 된다. 그게 너의 규칙이었다.
그런데 너는 또 십 분 먼저 나와 있다.
그게 거슬린다. 미지근해진 커피보다, 합판 테이블의 거친 결보다, 6이라는 숫자보다도. 너는 그 이유를 모르겠고, 모르겠다는 사실 자체가 자꾸 손끝을 간질인다. 컵을 들었다 놓는다. 들었다, 놓는다. 계단 쪽에서 누군가 올라오는 소리가 나면 고개부터 돌아가는데 — 그건 늘 그가 아니라 인부거나 바람이다.
그러니까 너는, 그가 아닌 발소리에 매번 실망하고 있는 것이다. 그 사실을 인정하기 직전에 계단이 다시 울렸다.
이번엔 그였다.
"늦었습니다. 죄송합니다."
군더더기가 없다. 변명도, 길게 끄는 사과도 없이 딱 그 두 마디. 그는 외투를 벗어 의자 등받이에 걸치며 곧장 테이블로 왔고, 앉기도 전에 펼쳐진 도면 위로 손을 뻗었다. 긴 손가락이 평면도의 한 귀퉁이를 짚는다. 기둥과 창 사이, 네가 어제 한참을 들여다보다 표시해 둔 바로 그 자리.
"여기, 이 동선이 마음에 걸리시죠."
질문이 아니라 확인이었다. 너는 입을 열려다 다물었다. 어떻게 알았느냐고 묻고 싶었지만, 그가 도면을 보는 방식 — 네가 망설인 흔적까지 읽어내는 그 눈을 보고 나니 물을 필요가 없어졌다.
낮은 목소리였다. 크지 않은데 또렷해서, 시끄러운 현장에서도 그 소리만 따로 떨어져 귀에 들어왔다. 그가 도면에서 너로 시선을 옮겼다.
"눈이 좀 피곤해 보이시는데. 어제 늦게까지 보셨어요?"
너는 대답 대신 어깨를 으쓱했다. 사실 새벽 두 시까지 이 공간의 소품 리스트를 들여다봤다는 말은 하지 않았다. 그런데 그가 그걸 알아본다는 게 — 십 분을 늦게 와 놓고, 와서는 십 초 만에 네 피곤을 짚어낸다는 게, 이상하게 균형이 맞지 않았다. 늦는 사람은 보통 무심한 법이다. 무심한 사람은 보통 늦는다. 그는 둘 중 어느 쪽에도 들어맞지 않았다.
기다리게 하면서, 와서는 온전히 거기 있는 사람.
그는 자리에 앉았다. 도면과 너 사이의 거리를 정확히 절반씩 두고, 펜을 들었다. 그가 거기 앉아 있는 동안에는, 어쩐지 이 낡은 사무실의 공기마저 조금 단단해지는 것 같았다.
"소품 콘셉트부터 정리하죠. 시간을 효율적으로 쓰는 게 좋으니까."
본론으로 들어가자 분위기가 달라졌다. 너는 이 공간에 빈티지를, 세월의 흠집이 그대로 남은 물건들을 앉히고 싶었다. 칠이 벗겨진 황동 손잡이, 모서리가 닳은 목재 콘솔. 건물이 살아온 시간과 대화하는 소품. 그런데 그는 고개를 천천히 저었다.
"그 방향이 예쁜 건 압니다. 그런데 이 건물은 구조 보강을 새로 들어가서, 마감이 깨끗하게 떨어질 거예요. 흠집 있는 소품을 거기 놓으면, 의도가 아니라 사고처럼 보일 위험이 있습니다."
"그건 디렉팅으로 정리할 수 있어요. 한두 개를 일부러 거칠게 두면 오히려—"
"맞아요."
너는 멈칫했다. 반박을 예상했는데 그는 끊지 않았다. 너의 말이 끝날 때까지, 펜을 내려놓고, 너를 보며 기다렸다. 네가 문장을 다 끝내고 나서야 그가 입을 열었다.
"그 말씀이 맞습니다. 한두 개를 의도적으로 두는 건 좋아요. 다만 그게 '한두 개'라는 게 보이게, 나머지는 받쳐줘야 한다는 거죠. 그래서 저는 베이스를 정돈된 걸로 깔고, 거기에 큐레이터님 흠집들을 점처럼 찍자는 겁니다."
조심스러운데 확고했다. 밀어붙이는 게 아니라, 네 말을 일단 다 받아 안은 다음, 그 위에 자기 방향을 얹는 식이었다. 너는 반발하려고 입을 벌렸다가, 그가 방금 한 일을 뒤늦게 깨닫는다. 그는 네 의견을 누르지 않았다. 끝까지 들었고, 인정할 부분은 인정했고, 그러고 나서 이끌었다.
회의실에서 십 년을 보내면서 너는 안다. 끝까지 듣는 남자가 드물다는 걸. 듣는 척하다 결론만 자기 걸로 가져가는 사람은 많아도, 진짜로 네 문장의 마지막 마디까지 기다려주는 사람은 거의 없다는 걸.
그게 — 신경 쓰인다. 그가 일하는 방식이, 생각하는 결이, 자꾸 들여다보고 싶어진다. 너는 펜을 고쳐 쥐며 반론을 이어갔고, 그도 받아쳤고, 그렇게 한 시간이 어떻게 갔는지 모르게 지나갔다. 의견은 끝내 한 군데서 부딪힌 채로 남았지만, 이상하게 기분이 나쁘지 않았다.
"오늘은 여기까지 하죠. 다음에 마저."
그가 도면을 접었다. 외투를 챙기는 그의 손을 너는 무심코 눈으로 좇다가, 들켰다 싶어 시선을 거뒀다. 그 순간 그가 고개를 들었고 — 눈이 맞물렸다. 반 박자. 너는 먼저 눈을 내렸다. 커피 컵으로, 창밖 간판으로, 어디로든. 그가 뭔가 말하려는 듯 입가가 살짝 움직였지만, 결국 가벼운 목례만 남기고 돌아섰다.
그가 나가고, 사무실에 너 혼자 남았다.
짐을 챙기려 책상으로 돌아섰을 때, 너는 그것을 봤다.
도면 옆, 네 노트 위에 가지런히 놓인 우표 세 장. 빛바랜 갈색과 청록색, 가장자리가 톱니처럼 잘린 작은 직사각형들. 한 장에는 낯선 첨탑이, 한 장에는 글자가 — 읽을 수 없는 알파벳. 리투아니아. 너는 그 단어를 어렵게 읽어냈다.
지난주였다. 이 합판 테이블에서 커피를 마시다가, 별생각 없이 흘린 한 마디. "요즘 엽서 쓰는 게 소소한 낙이에요." 누구한테 하는 말도 아니었다. 그냥 식어가는 침묵을 메우려고 한 혼잣말에 가까웠다. 그는 그때 도면만 보고 있었다. 듣고 있는 줄도 몰랐다.
그런데 기억했다. 일주일을, 어딘가에서 이 우표 세 장을 구해 올 만큼.
너는 우표를 집어 들지 못하고 한참을 서 있었다. 별거 아니야. 너는 속으로 말한다. 협업 시작인데 이 정도 성의는 누구나 하는 거고, 업무 관계를 매끄럽게 하려는 배려일 뿐이야. 늦는 건 그냥 나쁜 습관이고, 우표는 그냥 업무용 선물이고. 두 개 다 별거 아니야.
말은 그렇게 하면서, 너의 손은 다 식어버린 커피를 들어 또 한 모금 마신다. 미지근하다 못해 차가워진 그것을. 별거 아니면, 왜 너는 아직 여기서 이 차가운 걸 마시고 있나. 왜 그가 나간 계단 쪽으로 귀가 자꾸 기울어 있나. 머리가 정리한 말을 몸이 듣지 않는다. 손끝이 우표의 톱니 가장자리를 따라 천천히 미끄러진다.
그래서 너는 못을 박기로 한다. 마음속에, 단단하게.
여섯 달. 끝이 정해진 비즈니스. 정산서 한 장이면 깨끗하게 닫히는 관계. 선 넘지 말자. 우표는 서랍에 넣어두고, 십 분 먼저 나오는 습관도 오늘부로 그만. 늦는 사람한테는 늦게 가면 된다. 너의 규칙으로 돌아가면 된다. 너는 우표 세 장을 노트 사이에 끼우고, 가방을 어깨에 걸쳤다. 됐다. 정리됐다.
계단을 내려가는데, 1층 입구에서 그가 휴대폰을 보며 서 있었다. 아직 안 갔구나. 너를 보더니 그가 화면에서 눈을 뗐다.
"아, 다음 미팅요. 저는 화요일이 편한데, 괜찮으세요?"
무심한 한마디였다. 일정을 잡는, 지극히 업무적인 문장. 그런데 그 '편한데'라는 말에 어쩐지 — 너랑 또 본다는 사실을 당연하게 깔아둔 그 어조에, 방금 박은 못이 미세하게 흔들렸다.
"……화요일, 네. 괜찮아요."
"그럼 그때. 오늘 고생하셨습니다."
그가 가볍게 고개를 숙이고 돌아섰다. 너는 그의 등을 봤다. 또 십 분 늦게 올, 그러나 와서는 온전히 거기 있을 사람의 등을. 멀어지는 그 뒷모습을 보며 너는 깨닫는다. 정작 묻지 못한 게 하나 있다는 걸.
저 사람은, 왜 매번 정확히 십 분을 늦는 걸까.
그리고 더 곤란한 건 — 너는 이미 그 답을 알고 싶어졌다는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