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가 도착하는 시간
민재
3편 · 연재 중
줄거리
여섯 달짜리 협업 계약으로 만난 건축가 민재는 미팅마다 십 분씩 늦으면서도 내가 무심코 흘린 말을 기억해 책상 위에 빈티지 우표를 올려두고, 그 낙차를 어디에 둬야 할지 모른 채 나는 어느새 미팅 날마다 십 분 먼저 나와 그를 기다린다.
회차
1화십 분
인테리어 큐레이터인 화자는 이유를 모른 채 늘 십 분 먼저 나와 민재를 기다린다. 미팅에서 민재는 화자의 도면 고민을 선제적으로 짚어내고 상대 말을 끝까지 들은 뒤 자신의 방향을 얹는 방식으로 협업해, 화자는 그의 일하는 결에 자꾸 눈이 간다. 민재가 떠난 뒤 화자는 도면 옆에서 리투아니아 우표 세 장을 발견한다 — 지난주 무심코 흘린 혼잣말을 그가 기억해 구해온 것이다. 화자는 6개월 계약이라는 틀을 못으로 박고 감정을 억제하기로 다짐하지만, 1층에서 민재와 마주쳐 화요일 미팅을 담담히 약속한다. 멀어지는 그의 등을 보며 화자는 왜 그가 매번 정확히 십 분을 늦는지 알고 싶어졌다는 사실을 스스로 인정한다.
2화십 분의 행방
민재는 오늘 처음으로 먼저 나와 있었고, 화자가 한 번도 말하지 않은 채광 불편을 블라인드로 해결해두었다. '십 분 늦는 이유'를 묻자 그는 '들르는 데가 있다'고만 하고 화제를 덮었다. 봉투를 주고받다 그의 손가락이 화자 손등 위에서 멈췄다가 물러섰고, 헤어질 때 그는 '빛 드는 자리에 그냥 앉아 있을 것 같아서' 먼저 왔다고 고백했다. 이후 화자는 자료 봉투에서 흘러나온 영수증을 줍고, 결제 시각 오후 1시 48분이 미팅 전 정확히 십 분의 공백을 가리킨다는 사실을 계산해낸다. 상호는 잉크가 닳아 읽히지 않으며, 화자는 영수증을 지갑 가장 안쪽에 접어 넣는다.
3화십 분의 자리
화자는 전시장 가는 길에 영수증 상호와 일치하는 간판을 알아보고 'ㅇㅈ우표·문구'에 들어서다 봉투를 들고 나오던 민재와 마주친다. 민재는 처음으로 '들킨 사람의 얼굴'을 드러내고, 가게 노인은 무심코 '부소장님'이라는 옛 호칭과 '매번 십 분 딱 채우고 간다'는 사실을 털어놓는다. 민재는 '예전에 한 번 십 분이 늦어서—'라고 말하다 도로 삼키고, '오늘은 여기까지 하죠'로 대화를 차단한 뒤 혼자 돌아선다. 화자는 손을 반쯤 올리다 멈추고, 머리는 아무것도 아니라고 셈을 끝냈는데 발이 떨어지지 않는 채 골목에 남겨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