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지
1화

거기 뭐가 보여, 네 눈에

2026-06-10

등장인물: 연우

왜 모르는 도예가가 네 좌판 앞에서 머그를 닦아 세워두고는, 사라는 말 대신 엉뚱한 걸 물었을까.

"거기 뭐가 보여, 네 눈에."

비는 진작부터 좌판 위로 들이쳤고, 너는 천막 모서리를 접으려 손을 뻗던 참이었다. 마지막 손님도 끊긴 평일 오후, 마포 골목의 플리마켓은 거의 다 좌판을 거뒀다. 그런데 그 사람만 가지 않았다.

빗물이 머그 안쪽에 고여 손잡이까지 흘러내렸는데, 그가 제 소매로 잔을 닦았다. 천천히, 안쪽 곡선을 따라. 그러고는 네 매대 한가운데, 잘 보이는 자리에 다시 세워뒀다. 제 물건도 아닌데. 사겠다는 것도 아닌데.

너는 손을 멈췄다. 빗소리가 갑자기 또렷해졌다.

"네?"

"이 잔." 그가 턱으로 머그를 가리켰다. 손은 흙물이 말라 갈라진 자국이 손금처럼 박혀 있었다. "물 고이니까 안이 다르게 보여서. 너 눈엔 뭐가 보이나 해서."

이상한 질문이었다. 잔은 잔이지. 너는 그렇게 대답하려다, 정말로 잔 안을 들여다봤다. 고인 빗물에 천막의 회색이 담기고, 그 위로 네 얼굴 윤곽이 흐릿하게 떠 있었다.

"……제 얼굴이요. 천막이랑."

"그치." 그가 처음으로 웃었다. 입꼬리만 살짝, 끝을 확정 짓지 않는 웃음. "비 와서 좋은 게 그거야. 빈 그릇이 안 비어 보여."

대답이 되지도, 안 되지도 않는 말. 너는 그 말을 어디다 놓아야 할지 몰라서 그냥 들고 있었다. 그 사이 빗줄기가 굵어져 좌판 위 작은 접시들이 자글자글 울었다.

"여기 다 젖겠다." 그가 네 매대를 둘러보며 말했다. 재촉이 아니라 그냥 사실을 두고 가는 말투였다. "안쪽에 내 작업실 있어. 비 그을 때까진 거기서."

그가 먼저 박스 하나를 들었다. 묻지도 않고, 당연하다는 듯이. 너는 거절할 타이밍을 놓쳤고 — 아니, 솔직히 놓치고 싶었는지도 몰랐다.

골목 가장 안쪽, 간판도 없는 미닫이문을 그가 어깨로 밀었다. 흙냄새가 먼저 끼쳤다. 비에 젖은 시멘트 냄새랑 섞여서, 차가운데 이상하게 안온했다.

"앉을 데가 마땅찮은데." 그가 물레 옆 나무 의자에 쌓인 천을 치웠다. "여기 앉아. 손은 닦고 만져야 돼, 다."

너는 박스를 내려놓으며 공방을 훑었다. 물레, 가마, 벽을 가득 채운 선반. 그런데 한쪽 선반이 좀 달랐다. 거기엔 멀쩡한 그릇이 하나도 없었다.

이가 나간 사발, 손잡이가 떨어진 주전자, 금이 쩍 간 접시. 깨진 것들만 모아둔 선반.

"이건 왜 안 버려요?" 너는 무심코 물었다.

그가 주전자에 물을 올리다 잠깐 멈췄다. 등을 보인 채였다.

"버리려고 했지, 처음엔." 그가 컵 두 개를 꺼냈다. "근데 깨진 자리를 보면 그게 왜 깨졌는지가 보이거든. 너무 얇게 뺐거나, 가마에서 욕심을 냈거나. 멀쩡한 건 안 가르쳐줘. 잘된 건 왜 잘됐는지 잘 몰라."

그가 컵을 건넸다. 따뜻한 보리차였다. 손끝이 잠깐 스쳤는데, 그 사람 손은 생각보다 거칠고 따뜻했다.

"그래서 못난 것만 모아둬?" 너는 컵을 두 손으로 감쌌다.

"못난 거 아니고." 그가 너를 봤다. 똑바로. "솔직한 거지. 잘 안 된 날의 나니까."

말수가 적은 사람인 줄 알았는데, 입을 열면 한 칸씩 깊은 데로 내려가는 사람이었다. 너는 보리차를 한 모금 넘기면서, 왜 이 사람이 좌판에서 네 잔을 닦았는지 조금 알 것 같았다. 빈 잔도 안 비어 보인다던 말. 깨진 것도 안 버린다는 사람.

선반 맨 아래, 다른 깨진 것들 틈에 컵 하나가 끼어 있었다. 그건 깨지지도 않았는데 거기 있었다. 몸통이 한쪽으로 비뚜름하게 기울고, 입술 닿는 테두리가 울퉁불퉁한 컵.

"이건 왜 여기 있어요?" 너는 그걸 집어 들었다. "안 깨졌는데. 그냥…… 좀 못생겼네."

말해놓고 아차 싶었다. 근데 이미 늦었다.

그가 보리차를 따르던 손을 멈췄다. 아주 잠깐. 다른 사람은 몰랐을 만큼 짧게.

"그건." 그가 입을 열었다가 다물었다. 다시 열었다. "응. 못났지."

그런데 그 컵, 손때가 달랐다. 비뚤어진 손잡이 안쪽이 다른 데보다 매끄럽게 닳아 있었다. 누가 오래, 자주 쥔 자리. 너는 그 매끈함을 손끝으로 느끼고는, 그를 다시 봤다.

"이거…… 자주 써요?"

그의 시선이 컵으로 갔다가, 너한테 왔다가, 창밖 빗줄기로 도망쳤다.

"매일 마셔, 그걸로." 너무 빨리 인정한 게 멋쩍었는지 그가 말끝을 흐렸다. "처음 물레 배울 때 뺀 거라. 똑바로 안 서. 들면 살짝 기울고."

"근데 왜 제일 못난 걸 매일—"

"기울어서." 그가 네 말을 잘랐다. 그러고는 조금 당황한 듯, 평소보다 말이 빨라졌다. "기울면 입에 닿는 데가 정해져. 매번 같은 자리에 입이 가. 똑바른 컵은 아무 데나 닿잖아. 이건…… 자기가 어떻게 잡혀야 하는지 아는 거지."

말해놓고 그가 입을 다물었다. 너무 많이 말했다는 얼굴이었다.

그러니까 그건 결함이 아니라 버릇을 가르치는 컵이었다. 못난 걸 매일 쥐는 사람. 잘된 건 선반 위에 진열하고, 못난 건 손에 두는 사람. 너는 손안의 보리차 컵을, 까닭 없이 조금 더 꼭 쥐었다.

"근데 너." 그가 갑자기 화제를 돌렸다. 컵 얘기에서 도망치듯이. "아까 잔에서 네 얼굴 보인다 했잖아. 그거 좋은 눈이야. 다들 잔만 보거든. 안에 뭐가 담기는지는 잘 안 봐."

칭찬인데, 동시에 자기 얘기를 덮는 천 같은 말이기도 했다. 너는 그가 방금 무언가를 들켰고, 그걸 비유로 덮어 자리를 피했다는 걸 알았다. 알면서, 너는 캐묻지 않았다. 다만 보리차를 마시는 내내, 선반 맨 아래 그 기울어진 컵 쪽으로 자꾸 눈이 갔다.

비가 잦아들 무렵, 그가 물레 옆 선반에서 컵 하나를 꺼냈다. 오늘 구운 거라고 했다. 손바닥에 딱 들어오는 크기에, 유약이 호수처럼 깊은 청회색.

"이거." 그가 네 쪽으로 내밀었다. "가져가."

"네? 안 돼요, 이거 팔 거잖아—"

"안 팔아, 이건." 그가 컵을 네 손에 그냥 쥐여줬다. 거절할 새도 없이. 손이 다시 한 번 스쳤고, 이번엔 그가 일부러 천천히 뗀 것 같았다. "비 그을 때까지 있어줬으니까. 값은 됐어."

따뜻했다. 방금 가마에서 나온 것도 아닌데, 그의 손에 있다 와서인지 미지근한 온기가 남아 있었다.

"이런 거 아무한테나 줘요?" 너는 컵을 받으면서 물었다. 가벼운 농담처럼 던졌는데, 답이 듣고 싶었다.

그가 너를 봤다. 아까 깨진 선반을 설명할 때랑 같은 눈으로. 그러다, 늘 말끝을 흐리고 비유 뒤로 숨던 사람이 아니게 됐다.

"아무한테나 안 줘. 하나도." 낮고, 처음으로 흐리지 않은 목소리였다. 흙물 마른 손이 네가 쥔 컵 위로 잠깐 머물렀다, 덮듯이. "여기 누구 들인 것도 오늘이 처음이고."

그 손의 무게에, 컵을 쥔 손가락 끝이 저릿했다. 비유 뒤로만 숨던 사람이, 너 하나만 똑바로 보면서 아무것도 흐리지 않고 말한 건 그게 처음이었다.

그러고 그는 다시 아까의 그 사람으로 돌아갔다. 무언가 말하려고 입을 살짝 벌렸다 — 정말로 무슨 말이 거기 걸려 있었다. 너는 그게 나오기를 기다렸다. 빗소리가 멎은 공방이 너무 조용해서, 그 사람 숨소리까지 들릴 것 같았다.

"……아니." 그가 결국 다른 말을 골랐다. 하려던 말을 삼킨 자리에, 물음 하나를 슬쩍 놓았다. "너는, 비 오는 날 좌판 왜 안 접고 있었어? 다 갔는데."

그건 진짜 궁금해서 묻는 말이 아니었다. 하고 싶은 말을 못 해서 대신 던진 질문이었다. 너도 그걸 알았다. 그래서 대답 대신 그냥 컵을 꼭 쥐었다.

"……모르겠어요. 그냥, 누가 올 것 같아서."

그가 희미하게 웃고는, 돌아섰다. 물레 앞으로 가서 다시 흙을 만지기 시작했다. 그게 작별인사였다. 더 붙잡지도, 더 말하지도 않고, 그냥 너를 보내주는 방식.

너는 공방을 나섰다.

골목은 비에 씻겨 반들거렸다. 가로등 불빛이 젖은 바닥에 길게 번졌다. 너는 컵을 손에 쥔 채 걸었다. 걷다 보니 컵이 손안에서 자꾸 한쪽으로 기울었다. 들면 살짝 기울고. 매번 같은 자리에 입이 가. 그 사람 목소리가 따라붙었다. 똑바로 못 서는 컵을, 이 사람은 또 만들었구나. 누가 어떻게 쥐어야 하는지 아는 컵을, 네 손에 쥐여 보냈구나.

비 피한 것뿐이야. 컵 하나 받은 것뿐이고. 그렇게 스스로한테 말했는데, 발걸음은 자꾸 그 물음을 되감고 있었다. 거기 뭐가 보여, 네 눈에. 그 사람이 삼킨 말은 뭐였을까. 입을 벌렸다 골라낸 다른 말 밑에, 진짜 하려던 건—

거기까지 떠올리다 너는 스스로 멈췄다. 그만, 비 피한 것뿐이라니까.

큰길로 나서기 직전, 너는 무심코 컵을 돌려 바닥을 봤다. 작가들은 보통 바닥에 도장이나 이름을 새기니까. 어떤 사람인지, 이름이라도 알고 싶어서.

그런데 거기엔 이름이 없었다.

대신, 흙이 마르기 전에 손톱 끝으로 긁어 새긴 자국 하나. 한 획을 긋다가, 마저 긋지 못하고 만 자리였다. 글자가 되려다 멈춘 것 같은. 아까 그 사람이 입을 벌렸다 삼킨 말이 꼭 이렇게 생겼을 것 같은, 한 획.

너는 가로등 아래 멈춰 서서 그걸 한참 들여다봤다.

깨진 건 절대 안 버린다던 사람이, 이건 왜 끝까지 긋지 못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