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 번. 그가 입을 열었다 닫은 횟수다.
말로 밥 먹고 산다는 남자가, 너의 책상 맞은편에서 첫 마디를 세 번 고쳐 삼킨다. 형광등이 윙 울리는 좁은 심문실에서, 너는 그 미세한 떨림을 놓치지 않는다 — 그게 네 직업이니까.
"성함이 유찬, 맞으시죠."
너는 조서에 적힌 이름 위로 펜 끝을 짚었다. 7년 만에 재개된 실종 사건. 마지막 목격자 명단에 한 줄로 올라 있던 남자가, 지금 네 앞에 앉아 손가락 마디를 한 번 접었다 폈다.
—
"맞아요. 유찬. 흔한 이름인데 흔하게 안 생겼다는 말 자주 듣습니다."
농담이었다. 톤도 정확하고 타이밍도 정확한데, 어딘가 반 박자가 비어 있다. 진짜로 웃기려는 사람의 호흡이 아니라, 웃기지 않으면 안 되는 사람의 호흡. 너는 그 차이를 안다. 이 방에 앉는 사람들은 대부분 둘 중 하나다. 너무 말이 많거나, 너무 없거나. 그는 말이 많은 쪽인데 — 이상하게, 그 많은 말이 전부 너를 피해서 흘러간다.
"실종자 한도윤 씨와는 어떤 사이였습니까."
"같은 작업실 썼어요. 한 2년? 저는 카피 쓰고, 도윤이는 일러스트 하고. 책상이 등 맞대고 있었으니까…… 등은 잘 알죠. 얼굴보다."
그가 또 픽 웃었다. 혼자 웃고 혼자 거뒀다. 입꼬리가 올라갔다가, 너의 무표정을 확인하고 천천히 내려갔다. 그 내려가는 속도가 묘하게 신경 쓰였다. 보통은 형사가 안 웃어주면 다음 농담을 던지거나 입을 다문다. 그는 둘 다 안 했다. 그냥 너를 봤다. 너무 오래.
"질문에만 답해주시면 됩니다."
"네."
"마지막으로 한도윤 씨를 본 게 언제죠."
"3월 12일. 금요일이었고…… 비 왔어요. 도윤이가 우산 안 가져와서 제 거 빌려줬는데, 그게 마지막이었네요. 우산이 돌아온 적이 없으니까."
너는 받아 적었다. 3월 12일, 우산. 그가 말하는 동안 너는 그의 손을 봤다. 손가락이 책상 모서리를 따라 아주 작게 움직이고 있었다. 글씨를 쓰는 것처럼. 허공에 뭔가를 자꾸 쓰는 버릇. 직업병인가. 카피라이터라고 했지.
"그날 한도윤 씨한테 특이한 점은 없었나요. 평소와 다른 행동이라든가."
"음." 그가 의자에 등을 기댔다. "도윤이는 매일이 특이했어요. 화요일마다 다른 사람이 됐거든요. 그래서 화요일이 아니면 정상인 편이었는데, 3월 12일은 금요일이었으니까…… 정상이었겠죠."
"유찬 씨."
"네."
"지금 농담하실 자리 아닙니다."
그가 입을 다물었다. 이번엔 길게. 그리고 처음으로, 농담이 아닌 얼굴이 잠깐 비쳤다 — 들킨 사람의 얼굴. 농담을 멈추라는 말을 들었을 때가 아니라, 너한테 그 말을 들었을 때 비로소 멈추는 얼굴. 거슬린 건 그 얼굴이 아니라, 그걸 굳이 한 겹씩 들여다보고 있는 너 자신이었다.
"죄송합니다." 그가 말했다. "긴장하면 말이 많아져서. 원래는 더 심해요. 이 정도면 양반이에요, 진짜."
"긴장할 이유가 있나요?"
질문이 그의 얼굴 한가운데에 정확히 꽂혔다. 그가 너를 봤다. 이번엔 피하지 않고, 정면으로. 너는 그 시선이 책상을 건너 너에게 닿는 동안, 펜을 쥔 손이 저도 모르게 멈춰 있는 걸 뒤늦게 알았다.
"형사님 앞이잖아요." 그가 천천히 말했다. "안 긴장하는 게 더 이상한 거 아니에요?"
맞는 말이었다. 너무 맞는 말이라, 오히려 의심스러웠다.
—
조사가 한 시간을 넘겼다. 녹취기의 빨간 불이 깜빡였고, 너는 같은 질문을 각도만 바꿔 다시 던졌다. 3월 12일의 동선, 작업실 사람들, 한도윤의 금전 관계, 마지막 통화. 그는 대체로 성실하게 답했다 — 너무 성실해서, 그 성실함이 또 농담처럼 들릴 지경으로. 답과 답 사이마다 한 줄씩 쓸데없는 말이 끼었고, 너는 그걸 다 흘려보냈다. 형사 일을 7년 하면 흘려보내는 법을 익힌다. 진짜 중요한 건 사람이 의도하지 않은 데서 새어나오니까.
그게 새어나온 건, 네가 식은 커피를 한 모금 마셨을 때였다.
"형사님, 그거 안 달아요?"
너는 잔에서 입을 뗐다.
"네?"
"커피요. 시럽 안 넣으셨잖아요. 쓰지 않아요, 그거?"
너는 잠깐 그를 봤다. 종이컵엔 아무 표시도 없었다. 너는 시럽을 넣지 않는다. 7년째. 회식 자리에서도, 잠복근무 중에도, 누가 사다 줘도 시럽은 빼달라고 한다. 그건 네 습관이지 누가 알아야 할 정보가 아니었다. 특히 한 시간 전에 처음 만난 참고인이.
"제가 시럽 안 넣은 걸 어떻게 아셨죠."
그의 얼굴에서 뭔가가 아주 빠르게 지나갔다. 손을 데었다가 떼는 속도로. 그리고 그는, 단 한 박자 만에 그 위를 농담으로 덮었다.
"종이컵 안 봐도 알죠. 시럽 넣는 사람은 컵을 흔들거든요. 휘저으려고. 형사님은 안 흔들었어요. 직업이 사람 관찰이라서. 죄송합니다, 이런 게 또 직업병이라."
매끄러웠다. 너무 매끄러워서, 미리 준비해둔 변명 같았다. 그런데 사람이 미리 준비할 수 있는 건 거짓말이지 진실이 아니다. 너는 펜을 내려놨다.
"왼손으로 펜 돌리시네요."
"……네?"
이번엔 그가 멈췄다. 너는 방금까지 무의식적으로 펜을 왼손 손가락 사이에서 돌리고 있었다 — 생각할 때 나오는 버릇. 그가 그걸 보고 있었다. 한 시간 내내. 답을 하면서도, 농담을 하면서도, 그의 눈은 네 왼손을 따라다니고 있었던 거다.
"아니, 그게……" 그가 말끝을 흐렸다. 처음으로. 한 시간 동안 한 번도 흐리지 않던 말끝을. "형사님이 아까부터 계속 돌리셔서. 떨어뜨릴 것 같아서 봤어요. 그냥."
거짓말이다. 떨어뜨릴까 봐 보는 눈빛과, 외우려고 보는 눈빛은 다르다. 그는 너를 외우고 있었다. 처음 보는 사람을 외우는 방식이 아니라, 이미 다 아는 걸 확인하는 방식으로.
위화감이 등줄기를 타고 올라왔다.
너는 그걸 직업적인 감각이라고 정리했다. 용의선상에 가까운 인물이 조사관의 신상을 파악하고 있다 — 그건 경계해야 할 일이지 신경 쓸 일이 아니다. 그래, 경계. 이건 경계다. 펜을 쥔 손이 다시 움직였고, 너는 일부러 오른손으로 옮겨 쥐었다. 그가 그 동작을 봤다. 보고, 아주 작게 웃었다. 들킨 걸 들킨 사람처럼. 너는 그 웃음이 왜 미안해 보이는지 알 수 없었고, 알 수 없다는 게 가장 거슬렸다.
—
"잠깐 쉬었다 하죠."
너는 녹취기를 껐다. 빨간 불이 꺼지자 방이 조금 더 좁아진 것 같았다. 기계가 듣고 있을 때와 아닐 때, 사람은 다른 얼굴을 한다. 너는 그 순간을 일부러 만든다. 불이 꺼진 직후의 몇 초, 사람들이 가장 무방비해지는 그 틈.
그는 무방비해지지 않았다. 대신 조용해졌다.
농담이 멈췄다. 한 시간 동안 단 한 번도 비지 않던 그의 입이, 처음으로 완전히 닫혔다. 그는 두 손을 깍지 껴 책상에 올리고, 그 위에 시선을 떨궜다. 형광등이 윙, 다시 울었다. 그 소리가 들릴 만큼 방이 조용했다.
"형사님."
"네."
"하나만 물어봐도 돼요. 조사랑 상관없는 거."
"말씀하세요."
그가 고개를 들었다. 그리고 너를 봤다 — 한 시간 내내 너를 보던 그 눈인데, 이번엔 농담이 한 겹도 발라져 있지 않았다. 발가벗은 눈. 너는 형사 일을 하며 온갖 눈을 봤다. 거짓말하는 눈, 겁먹은 눈, 빌어먹을 만큼 뻔뻔한 눈. 그런데 이런 눈은 — 오래 참았다가 마침내 마주 본 사람의 눈은, 자주 보지 못했다.
"잘 지냈어요?"
질문이 너무 작아서, 너는 한 박자 늦게 들었다.
"……뭐라고요?"
"아니에요." 그가 바로 거뒀다. 손바닥으로 얼굴을 한 번 쓸어내리며. "혼잣말. 죄송합니다. 형사님 같은 분이 이런 일 매일 하면 힘들겠다, 그 생각이 그냥…… 입으로 나왔네요. 직업병이에요. 생각이 자꾸 입으로 새요."
또 농담의 외피. 그런데 이번엔 외피가 너무 얇아서 안이 다 비쳤다. 너는 그 안에서 본 걸 뭐라고 불러야 할지 몰랐다. 그건 참고인이 형사에게 가질 수 있는 감정이 아니었다.
너는 머릿속으로 다시 정리했다. 이 남자는 한도윤 사건의 마지막 목격자다. 우산을 빌려준 사람, 등을 맞대고 2년을 일한 사람. 그가 나를 아는 것처럼 구는 건 — 수사를 흐리려는 수작일 수도 있고, 단순한 관찰벽일 수도 있고, 아니면. 아니면 뭐. 너는 거기서 생각을 멈췄다. '아니면' 다음은 직업적으로 생각할 영역이 아니었다.
그래도 한 가지는 확실했다. 그가 방금 '잘 지냈냐'고 물었을 때, 그건 처음 만난 사람한테 던지는 말이 아니었다. 그건 — 오래 못 본 사람한테 하는 말이었다.
너는 그를 기억하지 못했다.
아무리 뒤져도, 유찬이라는 이름도 이 얼굴도 네 어디에도 없었다. 그런데 그는 너의 커피를 알고, 너의 왼손을 알고, 어쩌면 그 이상을 알았다. 한쪽만 아는 관계. 그런 건 세상에 몇 가지 안 된다. 너는 그중 어느 것도 떠올리고 싶지 않았다.
"조서 확인하시고 서명해주세요."
너는 다음 장을 그에게 건넸다. 책상 너머로 종이를 밀어 보내면서. 그가 손을 뻗었다.
손끝이 스쳤다.
종이의 모서리에서, 그의 손가락과 너의 손가락이 — 아주 잠깐. 1초도 안 되는 시간. 그런데 그 1초가 이상하게 길었다. 그의 손은 따뜻했고, 너는 그 온도를 느낀 자신이 당황스러웠다. 너는 손을 뗐다. 너무 빨리 뗐다는 걸, 떼고 나서 알았다.
그가 종이를 봤다. 너의 손이 아니라 종이를. 일부러 종이만 보는 사람의 눈으로. 그도 알았다. 방금 스친 걸. 둘 다 알았고, 둘 다 모르는 척했다. 그게 이 방의 규칙이니까. 너는 형사고, 그는 참고인이고, 이 책상은 넘으면 안 되는 선이다.
"여기 서명만 하면 되죠?"
그의 목소리가 살짝 잠겨 있었다.
"네. 날짜도요."
그가 펜을 들었다. 왼손이었다. 너는 그가 펜을 왼손으로 쥐는 걸 봤고 — 그 순간, 네가 왜 펜을 돌리는 버릇을 가졌는지, 누구한테 그걸 배웠는지, 기억의 가장자리에서 뭔가가 아주 희미하게 일렁였다. 잡으려는 순간 사라졌다. 손에 잡힐 듯 잡히지 않는, 꿈에서 막 깬 직후 같은 느낌.
너는 그 느낌을 밀어냈다. 지금은 일하는 중이다. 책상 위의 종이, 녹취기, 사건. 그게 전부여야 했다.
—
조사가 끝났다.
너는 녹취기를 정리하고, 조서를 챙기고, 의자를 뒤로 밀며 일어섰다. 직무가 끝나면 사람은 다시 사람으로 돌아온다 — 형사에서 그냥 사람으로. 너는 그 경계에서 늘 조심한다. 특히 오늘처럼, 경계가 자꾸 흐려지는 날엔.
"오늘 조사는 여기까지입니다. 추가 조사 필요하면 다시 연락드릴 거예요."
"네." 그가 일어섰다. 의자가 끌리는 소리. "또 부르신다는 거죠? 그럼 다음엔 시럽 넣은 커피 사 올게요. 형사님 거 말고 제 거. 쓴 거 못 먹어서."
농담이었다. 가벼웠고, 정확했고,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한 시간 반 동안 쌓인 모든 이상한 순간들을 한 문장으로 덮어버리는 농담. 너는 받아주지 않았다. 받아줄 수 없었다.
"가셔도 됩니다, 유찬 씨."
"네. 수고하세요, 형사님."
그가 돌아섰다. 문을 향해 걸었다. 너는 조서를 정리하느라 고개를 숙였고 — 그래서 그가 문 앞에서 멈춘 걸, 처음엔 몰랐다.
손잡이를 잡은 채로, 그가 멈춰 서 있었다.
너는 고개를 들었다. 그의 등이 보였다. 한 시간 반 동안 농담으로 무장하고 있던 남자의, 무장이 풀린 등. 어깨가 아주 미세하게 내려가 있었다. 그가 천천히 — 정말 천천히, 마치 그러면 안 된다는 걸 알면서 그러는 사람처럼 — 너를 돌아봤다.
그 눈에 농담이 없었다. 이번엔 완전히 없었다.
뭔가 말하려는 입. 세 번째로 삼키는 첫 마디. 너는 그가 입을 열려는 걸 봤고, 그 순간 — 너도 모르게 숨을 멈췄다. 들으면 안 될 것 같은데, 듣고 싶었다. 그 모순이 가슴 한가운데서 부딪쳤다.
그가 입을 열었다.
"……아니에요."
그리고 닫았다. 또. 그가 옅게 웃었다. 이번엔 너를 향한 게 아니라 자기 자신을 향한 웃음. 한심하다는 듯이, 혹은 슬프다는 듯이.
"별거 아니에요. 잘 지내세요, 형사님. 진짜로."
문이 열렸다. 복도의 차가운 형광등 빛이 한 줄기 들어왔다가, 문이 닫히며 잘렸다. 그는 갔다.
너는 빈 의자를 봤다.
—
이건 직업적인 거다.
너는 책상 앞에 다시 앉으며 스스로에게 말했다. 용의선상에 가까운 인물이 조사관의 개인 습관을 파악하고 있었다 — 이건 사건의 변수지 감정의 문제가 아니다. 그가 나를 아는 것처럼 군 것도, 문 앞에서 돌아본 것도, 전부 수사의 맥락에서 해석돼야 한다. 한도윤은 아직 실종 상태고, 마지막 목격자가 형사에게 사적인 관심을 보이는 건 — 경계 대상이지 흔들릴 일이 아니다.
흔들리지 않았다. 너는 흔들리지 않았다.
그런데 왜 아직도 손끝이 따뜻한지. 종이 모서리에서 1초도 안 되게 스친 자리가, 왜 아직 거기 있는 것처럼 느껴지는지. 너는 그 손을 다른 손으로 덮었다. 덮으니 더 선명해졌다. 몸이 머리보다 먼저 뭔가를 기억하려 했고, 너는 그 기억의 정체를 알 수 없어서 더 불안했다.
용의선상의 사람이다. 너는 그 말을 세 번 되뇌었고, 세 번째엔 너도 그 말을 믿지 않았다.
—
그를 보낸 자리를 정리하려고, 너는 그가 앉았던 쪽 책상을 봤다.
거기, 종이가 한 장 남아 있었다. 조서가 아니라 메모지. 네가 질문을 적으라고 줬던, 그가 만지작거리던 그 메모지. 그가 무심코 두고 간 거였다. 너는 그걸 집어 들었다.
허공에 글씨를 쓰던 그 손버릇대로, 거기에 뭔가가 적혀 있었다. 의식하고 쓴 게 아니라, 생각이 손으로 새어나온 낙서. 카피라이터의 직업병. 생각이 자꾸 입으로, 손으로 샌다던 그 말 그대로.
한 줄이었다.
『여전히 펜은 왼손으로 돌리네. 7년 전에도 그랬어. 너만 그날을 기억 못 하는 게 다행인지 아닌지, 나도 아직 모르겠다.』
너의 손가락이 종이 위에서 멈췄다.
7년 전. 펜. 너만 기억 못 하는 그날.
펜을 놓은 지 한참인데, 왼손 손가락이 저 혼자 한 바퀴를 돌았다. 허공에서, 있지도 않은 펜을. 글씨를 모르고 산 손이 글씨보다 먼저 그를 알아본 것처럼. 너는 그 한 줄을 다시 읽었다. 한 번 더. 글자들이 눈앞에서 자리를 바꾸는 것 같았다. 7년 만에 재개된 실종 사건. 7년 전이라는 그 숫자가, 사건의 시간과 정확히 포개졌다.
너는 그를 모른다.
그런데 그는 너를, 7년 전부터 알고 있었다.
복도 쪽에서 멀어지는 발소리가 아직 들리는 것 같았다. 너는 메모지를 쥔 채, 한 번도 가본 적 없는데 이상하게 익숙한 어떤 자리의 가장자리에 서 있었다 — 잡으려 하면 사라지고, 놓으면 다시 일렁이는.
그가 두고 간 건 메모지 한 장이 아니었다.
너만 빠져 있는 7년이었다.
너는 일어섰다.
의자가 뒤로 끌리는 소리가 너 자신에게도 낯설었다. 방금까지 직무가 끝났다고, 형사에서 사람으로 돌아왔다고 정리하던 그 차분함은 어디로 갔는지. 메모지 한 장이 그 차분함의 솔기를 뜯어버렸다. 너는 그걸 손에서 놓지 못한 채 문을 향했다.
복도는 비어 있었다.
차가운 형광등이 일렬로 늘어선 긴 복도, 그 끝에 비상구의 초록 불빛. 발소리는 이미 들리지 않았다. 너는 그 빈 복도를 몇 걸음 따라갔고, 따라가면서 스스로에게 변명을 만들었다 — 참고인이 증거물이 될 수 있는 메모를 두고 갔으니 돌려주거나 회수해야 한다고. 그건 절차다. 절차. 너는 그 단어를 방패처럼 앞세우고 걸었다.
그런데 걸음이 점점 빨라졌다.
—
엘리베이터 표시등이 1층에서 멈춰 있었다. 그가 이미 내려갔다는 뜻이었다. 너는 계단 쪽 창문으로 갔다. 3층 복도 끝, 주차장이 내려다보이는 그 창. 유리에 네 얼굴이 반쯤 비쳤고, 그 너머로 — 그가 있었다.
가로등 아래, 주차장을 가로질러 걸어가는 등. 한 시간 반 동안 농담으로 빈틈없이 채워져 있던 그 등이, 지금은 아무것도 채우지 않은 채 천천히 멀어지고 있었다. 그는 우산을 안 가져왔다. 비는 안 왔는데도, 너는 왜 하필 우산을 떠올렸는지 몰랐다. 3월 12일, 우산. 돌아오지 않은 우산.
너는 창문에 손을 댔다.
부르면 들릴 거리였다. 유리를 두드리면, 이름을 부르면, 그가 돌아볼 거리. 너는 입을 열었다 — 그리고 거기서, 한 시간 반 전에 그가 너의 책상 앞에서 했던 그 동작을 네가 그대로 하고 있다는 걸 깨달았다. 첫 마디를 열었다 삼키는 동작. 세 번 고쳐 삼키던 그 입.
뭐라고 부를 건데.
유찬 씨. 그건 너무 멀고. 그의 이름 말고는 너에겐 그를 부를 말이 없었다. 그는 너를 7년 전부터 알았다는데, 너는 그를 부를 호칭 하나 갖고 있지 않았다. 그 비대칭이 유리창 위에서 너의 손바닥을 멈춰 세웠다.
그가 주차장 끝에서 잠깐 멈췄다.
너는 숨을 멈췄다. 그가 돌아볼 것 같았다. 한 번만 더, 문 앞에서 그랬던 것처럼. 그러면 너는 — 그러면 뭘 어쩔 건데. 너는 그 다음을 준비하지 못했다. 준비하지 못한 채로 그가 돌아보기를 바랐고, 바라는 자신을 들킬까 봐 유리에서 손을 뗐다.
그는 돌아보지 않았다.
가로등 빛이 닿지 않는 데까지 걸어가, 어둠이 그의 윤곽을 한 겹씩 지웠다. 마지막으로 보인 건 어깨였다. 그리고 없어졌다.
—
너는 한참을 창가에 서 있었다.
유리에 비친 네 얼굴은 네가 아는 얼굴이었다. 7년째 시럽을 빼는 입, 7년째 펜을 왼손으로 돌리는 손. 너는 그 손을 들어 눈앞에 펴 봤다. 손가락 사이에서 펜을 굴리는 버릇. 한 번도 어디서 왔는지 궁금해한 적 없는 버릇. 습관이란 그런 거니까 — 언제부턴가 거기 있었고, 너무 오래 거기 있어서 시작점을 묻지 않게 되는 것.
그가 그 시작점을 알고 있었다.
『여전히 펜은 왼손으로 돌리네. 7년 전에도 그랬어.』
너는 기억을 뒤졌다. 형사가 진술을 뒤지듯, 한 칸 한 칸. 7년 전이면 너는 막 형사 일을 시작했을 무렵이었다. 그 전의 너는 — 너는 거기서 손이 미끄러졌다. 7년 전. 그 언저리의 기억은 이상하게 매끄러웠다. 매끄럽다는 건 좋은 게 아니었다. 진술이 너무 매끈하면 의심하라고, 네가 그를 의심했던 그 이유 그대로 — 너 자신의 기억이 지금 너무 매끈했다.
붙잡을 모서리가 없었다.
특정한 사건을 떠올리려 하면 떠오르는 게 아니라 미끄러졌다. 그 시기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누구를 만났는지, 펜 돌리는 법을 누가 가르쳐줬는지 — 잡으려는 순간 손가락 사이로 빠져나갔다. 꿈에서 막 깬 직후, 분명히 꿨는데 내용이 사라지는 그 느낌. 아까 그가 펜을 왼손으로 쥐었을 때 기억의 가장자리가 일렁였던 그 느낌이, 이번엔 더 크게 일렁였다가 또 사라졌다.
너는 그게 무서웠다.
용의자가 너를 아는 것보다, 네가 너를 모르는 게 더.
—
너는 다시 심문실로 돌아왔다.
빈 방. 윙 우는 형광등. 그가 앉았던 의자는 조금 비뚤어진 채였다. 너는 책상 앞에 앉아 메모지를 다시 폈다. 세 번째로 읽었다. 글자는 변하지 않았다. 변한 건 너였다.
처음 읽었을 때 이건 수사의 변수였다. 마지막 목격자가 조사관의 신상을 파악하고 있다 — 경계 대상. 두 번째 읽었을 때 이건 위협의 가능성이었다. 그가 너를 안다는 건 너를 흔들 수 있다는 뜻이니까. 그런데 세 번째로 읽는 지금, 너는 이걸 위협으로도 변수로도 읽지 못했다.
『너만 그날을 기억 못 하는 게 다행인지 아닌지, 나도 아직 모르겠다.』
이건 너를 흔들려고 쓴 문장이 아니었다. 누가 본다고 생각하고 쓴 문장이 아니었다. 손이 제멋대로 흘린 거다. 생각이 자꾸 손으로 샌다던, 그 말 그대로. 협박은 상대가 읽기를 바라고 쓰지만, 이건 — 차라리 들키지 않기를 바라고 쓴 것에 가까웠다. 그래서 두고 갔다는 사실이, 일부러였는지 정말 무심코였는지조차 너는 알 수 없었다.
너는 그가 문 앞에서 돌아봤던 그 얼굴을 다시 떠올렸다. 농담이 한 겹도 발라지지 않은 얼굴. 잘 지냈어요, 라고 너무 작게 물었던 입.
그건 처음 만난 사람한테 하는 말이 아니라고 너는 이미 알았다. 이제 한 가지가 더 분명해졌다 — 그건 너를 흔들려는 사람의 입도 아니었다. 너를 무너뜨리려는 사람은 네 눈을 보며 천천히 묻는다. 그는 네 눈을 못 봤다. 묻고 나서 바로 거뒀다. 마치 물어놓고 자기가 더 다친 사람처럼.
너는 그게 어떤 종류의 얼굴인지, 마침내 알 것 같았다. 그건 오래 그리워한 사람이, 그리워한 티를 내지 않으려다 실패하는 얼굴이었다.
—
그 깨달음이 너의 명치에 묵직하게 내려앉았다.
너는 그를 기억하지 못한다. 그런데 그는 너를 7년 동안 기억했다. 7년 동안 기억한다는 건, 7년 동안 무언가를 놓지 않았다는 뜻이다. 사람은 아무것도 아닌 걸 7년이나 들고 있지 않는다. 그 무게가 방금 그의 등에 실려 있던 거였다 — 주차장을 가로지르던, 아무것도 채우지 않은 그 등에.
너는 손끝을 봤다.
종이 모서리에서 그의 손가락과 스쳤던 자리. 아직도 거기에 온도가 남아 있는 것 같다고, 너는 아까 한심하다고 정리했었다. 지금은 정리하지 못했다. 몸이 머리보다 먼저 그를 알아본 거라면. 머리는 7년의 어딘가를 잃어버렸는데, 손끝은 잃어버리지 않은 거라면.
너는 그 가능성을 직업적으로 밀어내려 했다. 밀어내려 할수록 또렷해졌다. 7년 전, 그를 만났고, 펜 돌리는 법을 그한테 배웠을지도 모르고, 그리고 — 그리고 너는 그걸 통째로 잃었다. 사건의 시간과 정확히 포개지는 7년이라는 숫자가, 우연이라고 하기엔 너무 정확했다.
한도윤은 7년이 아니라 석 달 전에 사라졌다. 그런데 사건은 7년 만에 재개됐다. 7년 전에 무슨 일이 한 번 있었고, 그게 지금 다시 열린 거다. 그리고 그 7년 전에, 유찬이라는 남자가 너의 삶 어딘가에 분명히 서 있었다.
너만 그 자리에 없다.
—
너는 메모지를 증거 봉투에 넣어야 했다.
절차대로라면. 참고인이 남긴 자필 메모, 사건의 시간과 연결되는 진술 — 이건 기록되고 분류되고 보고돼야 하는 물건이다. 너는 7년 동안 한 번도 이 절차를 어긴 적이 없다. 봉투는 서랍에 있었다. 손만 뻗으면 됐다.
너는 손을 뻗지 않았다.
대신 메모지를 한 번 더 접었다. 반으로, 다시 반으로. 그리고 재킷 안주머니에 넣었다. 봉투가 아니라, 심장에 가장 가까운 주머니에. 너는 그 동작을 하면서 네가 선을 하나 넘었다는 걸 알았다 — 7년 동안 넘지 않았던 선. 형사가 가장 먼저 배우는 선.
이상하게도 죄책감은 없었다. 있었던 건 차라리, 오래 막혀 있던 데가 한 번 트인 것 같은 감각이었다. 너는 이걸 사건으로 처리할 수 없었다. 이건 너의 일이었다. 너에게서 사라진 너의 7년이고, 그 7년을 혼자 다 들고 있던 한 사람이고 — 그건 봉투에 넣어서 다른 사람한테 넘길 수 있는 게 아니었다.
너는 알아야 했다.
그 결정이, 한 시간 반 동안 너를 어지럽히던 모든 위화감을 처음으로 한 방향으로 정렬시켰다. 흔들렸던 게 아니라, 방향을 못 찾았던 거였다. 이제 방향이 생겼다. 너는 그를 다시 부를 거다. 추가 조사라는 이름으로, 절차라는 외피를 쓰고. 그가 다음엔 시럽 넣은 커피를 사 오겠다고 했으니까 — 그 약속을, 너는 지키게 할 작정이었다.
너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번엔 의자 소리가 낯설지 않았다.
—
책상 위에 그의 조서가 놓여 있었다.
너는 마지막으로 한 번 더 그것을 들여다봤다. 인적사항란, 그가 또박또박 적은 글씨. 이름 유찬. 직업 카피라이터. 그리고 주소. 너는 그 주소를 한 번 읽고, 두 번 읽었다.
그 동네 이름에서, 또 그 일렁임이 왔다.
이번엔 아까보다 천천히 왔다. 어떤 골목, 비탈, 1층에 작은 카페가 있던 건물, 등을 맞대고 앉은 두 개의 책상 — 그런 그림들이 잡힐 듯 떠올랐다가, 손을 대는 순간 물처럼 흩어졌다. 한도윤의 작업실이 거기였다. 그런데 너는 그 동네를, 사건으로 알기 전부터 알고 있는 것 같았다. 발바닥이 먼저 아는 길처럼.
너는 눈을 감았다. 그 그림 한 장을 붙잡으려고. 비탈길, 카페, 두 개의 책상, 그리고 누군가의 왼손이 네 왼손 위에 겹쳐 펜 돌리는 법을 가르쳐주던 — 거기서, 정확히 거기서 그림이 끊겼다. 끊긴 자리가 아렸다. 몸은 그 다음을 기억하는데 머리가 못 따라가는, 그 어긋남이 아렸다.
너는 눈을 떴다.
—
심문실을 나서기 전, 너는 안주머니 위에 손을 한 번 댔다. 메모지가 거기 있었다. 접힌 종이의 모서리가 옷 너머로 만져졌다.
그가 마지막으로 했던 말이 떠올랐다.
잘 지내세요, 형사님. 진짜로.
그때 너는 그게 작별인 줄 알았다. 지금은 아니라는 걸 안다. 그건 작별이 아니라, 7년 전에 하지 못한 말을 7년 늦게 하는 사람의 인사였다. 그리고 그 사람은, 너를 두 번 잃을 각오를 하고 그 방을 나갔다. 한 번은 7년 전에. 또 한 번은 방금, 문 앞에서 첫 마디를 세 번째로 삼키면서.
너는 그를 두 번 잃게 둘 생각이 없었다.
복도의 형광등이 길게 늘어서 있었다. 너는 그 빛을 따라 걸으며, 한 번도 가본 적 없는데 이상하게 익숙한 그 자리로 — 잡으려 하면 사라지고 놓으면 다시 일렁이던 그 가장자리로, 이번엔 등을 돌리지 않고 걸어 들어갈 작정을 했다.
질문은 두 개였다.
나는 왜 이 사람을 모르는가. 이 사람은 왜 나를 이렇게 잘 아는가.
그리고 그 두 질문 사이 어딘가에, 너의 7년이 통째로 묻혀 있었다. 너는 안주머니의 종이를 한 번 더 만졌다. 접힌 자리가 손끝에 닿았다. 따뜻했던 그 손끝에.
엘리베이터 버튼을 눌렀다. 표시등이 천천히 올라오기 시작했다. 1층에서, 그가 사라진 그 방향에서.